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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NTERVIEW, 6 DECEMBER 2023
  • NIBGNUS
  • ‘알면 사랑한다.’ 여성성에 대해 깊고 진지한 고찰을 하는 닙그너스는 단언컨대 알면 알수록 사랑하게 되는 브랜드입니다. 닙그너스는 서울을 기반으로 과감하고 실험적인 디테일과 높은 완성도의 우먼 웨어를 선보이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 아슬하게 연결된 끈 사이로, 컷아웃 된 틈새로, 움직일 때마다 은근하게 드러나는 여성의 신비롭고 아름다운 신체와 요동치는 생명력. 머릿속에 떠오른 추상적 감상과 아이디어를 옷으로 표현해내는 일련의 과정은 가히 아름답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 브랜드가 곧 나이고, 내가 곧 브랜드라고 믿는 홍성빈 대표를 만나 브랜드 디렉터이자 디자이너로서 닙그너스를 만들어 가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 브랜드샵
  • 닙그너스라는 브랜드 이름이 독특하게 느껴지는데요, 뜻이 무엇일까요? 브랜드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제 이름 성빈의 영어 철자를 거꾸로 뒤집어서 만들어진 이름이에요. Sungbin→nibgnus. 기존의 특정한 뜻이 없으면서 인종이나 성별 등을 유추할 수 없는 단어를 만들고 싶은데 개인적으로 의미도 있는 단어가 뭘까 고민하다가 대학교 졸업작품 하던 4학년 때 지어서 쭉 쓰고 있는 이름입니다.

    학부 졸업 1년 후에 닙그너스를 런칭했어요. 그 1년 동안에는 theory 뉴욕 본사에서 여성복 디자인 팀에 있었는데 사실 기업의 디자인팀은 정말 디자인에만 포커스를 두어서 생산이나 그 후의 일에는 관여를 하지 않기도 하고, 직장 생활이 길지 않았기 때문에 브랜드 운영에 필요한 실무 지식이 0인 채로 시작을 하게 된거죠. 그냥 ‘혼자 석사 과정 밟는다고 생각하고 컬렉션을 내보자’ 라는 마음으로 시작해서, 판매 요청이 오는 아이템을 하나씩 만들면서 생산을 배우게 되고, 또 그러다가 컬렉션 전체를 생산해 보기도 하고, 그 다음엔 홀세일을 배우고, 이런 식으로 매 컬렉션 새롭게 뭔가를 배워가면서 브랜드 운영의 다양한 부분들을 채워나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 닙그너스의 디자인들을 보고 있으면, 디자이너 본인이 패턴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높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패턴에 대해 전문적으로 배웠거나 관련한 이력이 있나요?

    학부에서 여성복을 전공해서 그때 배운 것들을 잘 써먹고 있는 것 같아요. 뉴욕 파슨스 패션디자인 학부를 하고 런던 세인트 마틴 womens wear에서 교환학생을 했는데, 뉴욕과 런던은 디자인과 패턴의 접근이 조금 달라서 양쪽 다 경험해 본 것이 도움이 많이 되고 있습니다.

    뉴욕에서는 주어진 시간을 잘 분배하여 완성도 있게 컬렉션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면, 런던에서는 초기 리서치의 과정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해요. 스스로 고민하고 실험하고 개발해 낸 자신만의 연구 내용이 있어야 리서치로 인정해주고, 심지어는 이미지도 인터넷에서 다운받은 것이 아닌 도서관에서 직접 스캔해 온 것만 인정해 주기도 했어요.

    2019년에 브랜드를 시작했으니 이제 5년 차에 접어들었습니다. 브랜드를 처음 시작했을 때와 지금, 어떤 것이 달라지고 어떤 것이 여전할까요?

    학교에서는 아무래도 어떤 게 ‘주목'받는 디자인인가, 내 ‘색깔’은 무엇인가를 중점에 두고 가르쳤다고 하면 판매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서는 직접 브랜드를 운영해 보면서 배웠기 때문에, 아무래도 디자인을 보는 눈이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구매자의 심리를 반영하여 옷을 보는 시각이 새롭게 생겨난 것 같아서 그게 아마 변화된 부분이고, 어려운 길만 골라서 가고 싶은, 사서 고생하는 디자인적 취향은 아직 타협하거나 달라지지 않은 점이에요. 그 바람에 학교에서부터 10년째 노동의 강도가 안 변하고 있어요.

  • 22년도 F/W와 23년도 S/S에서 "MAGO"를 연이어 주제로 삼았는데요, 한국 고대 신화의 여신인 마고 할미를 뜻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더 자세한 이야기가 듣고 싶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영감을 받았고 왜 MAGO의 이미지를 컬렉션으로 가져오고 싶었나요?

    숲속을 걷다가 문득 땅에서 무언가 자라나서 각자의 생명력을 가지고 그게 어우러져서 순환되며 살아간다는 게 너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태초의 어머니 신이 이 환경을 창조했다면, 우리 인간들도 그런 어머니 신의 힘을 물려받아서 지금 ‘창조’하면서 살아가는 것 아닐지 라는 생각이 들어 그런 이야기를 마고라는 키워드로 풀었어요. 인간의 손을 타지 않은 날 것의 처녀림과 인간이 꾸며놓은 정원의 대조되는 모습들, 문명의 손이 타지 않은 숲을 가죽 가리개 같은 걸 두르고 뛰어다니는 소녀로서의 제 모습 같은 걸 상상해 보기도 하고요.

    위대한 자연과 그 자연의 순서와 패턴을 따라 하며 인간이 만들어내는 것들. ‘인위적’이라는 단어는 자연의 힘이 아닌 인간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뜻하지만, 인간 또한 자연에서 비롯한 창조의 욕구가 깃들어있는 존재라면 ‘인위적인 것이 곧 자연스러운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연스럽게 인위적으로, 많이 창조하고 표현하고 살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마고가 나왔습니다.

    그러고 나서 인간 여성 몸에서 이루어지는 잉태와 출산, 그리고 양육 등의 행위로서의 창조의 강력함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어서 마고 2를 만들었어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전사로만 이루어진 부족인 아마조네스의 이야기를 빌려서 ‘만약 21세기 현대 사회에서도 태초의 여성성이 최대치로 발현될 수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상상했어요. 우리는 어쩌면 수많은 규제하에, 사회가 용인하는 범주 내의 미적 기준에 맞추거나 혹은 본능적으로 이성의 호감을 사기 위해서 그들의 시선에 맞춰 한정적인 여성성만을 표현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그렇다면 이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진 상태에서 여성성은 무엇일지 생각했어요. 과감하게 컷아웃되고 스터드나 아일렛 등 메탈 소재들이 큰 사이즈로 쓰였어요. 전투복처럼 보였으면 좋겠고, 이 전투의 목적이 ‘야생의 여성성’을 되찾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미 손에 쥔 여성들이 그 이상의 것을 찾기 위함이라면 어떨까, 그렇다면 그들은 뭘 위해 싸우게 될까, 하는 상상들로 꽉 차 있는 컬렉션이에요.

    24 S/S 컬렉션 “unburnt”에 관해서도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unburnt”는 제가 마녀사냥의 역사에 대해서 꽂혀서 공부를 하다가 나오게 된 컬렉션이에요. 중,근세 시대에 행해진 학살 행위로서 우리가 보통 알고있는 종교적인 이유보다, 미망인, 과부들, 그러니까 지켜줄 남자가 없던 여성들의 재산을 표적으로 한 범죄인 경우가 많았다고 해요. 마녀를 신고한 사람이 마녀로 몰리게 된 사람의 재산을 가지게 되어서 그런 일들이 빈번했다고 하는데, 읽다가 문득 여성인권이 얼마나 발전해왔나 하는 감사함이 들었어요.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는 중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미래를 바라보다 보니 이런 주제에 관해 생각할 때 더 발전해야 할 점과 부족한 점들을 보통 생각하게 되지만, 저는 문득 ‘지금까지의 발전과 여성의 강인함을 축하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여러 가지 리서치와 실험을 해보다가 몇 가지 디테일들이 탄생했어요. 다양한 트림과 원단의 특성을 활용해서 옷이 인체의 움직임에 반응해, 옷 자체가 주체적인 움직임을 가지게 되죠. 길게 내린 태슬같이 생긴 끈 디테일들을 많이 썼어요. 옷을 입고 움직이다 보면 끈들이 자기만의 춤을 춰요. 그 움직임들이 꼭 우리 같다고 생각해서 만들면서 왜인지 기특하다는 마음이 자꾸만 들었어요.

  • 지난 시즌들의 컷 아웃과 아일렛을 거쳐, 올해 발매한 컬렉션에서는 길게 늘어진 태슬의 사용이 가장 눈에 띄었어요. 매 시즌마다 특정한 디테일에 꽂히게 되는 편일까요?

    네. 보통 컬렉션을 빌딩할때 저의 정신에 자주 대두되는 어떤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상상하고 그 이야기에서 키워드를 뽑아서 다양한 시각적 실험을 해보는데, 그러면서 한두 가지로 좁혀지면 그걸 다양한 아이템에 녹여보고 있어요.

    닙그너스의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면 동묘를 비롯하여 로우(RAW)한 서울의 이미지가 함께 업로드되어 있습니다. 옛스러운 서울의 풍경이 개방적이고 과감한 여성을 표방하는 닙그너스의 브랜드 이미지와 대비되며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특별히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한 애착이 있는지?

    저는 쭉 일산과 미국을 왔다 갔다 하면서 자라고, 서울에서 처음 살게 된 게 20대 중반이라, 문득 보이는 자연스러운 서울의 모습이 매력적으로 느껴질 때가 많아요. 일산은 계획도시라 모든 것이 반듯반듯한다면, 서울은 시간이 덧씌운 흔적들이 켜켜이 쌓여 있는 모습이 보일 때 엄청 멋있거든요. 여러 가지 역사가 지나간 흔적이 잘 섞여서 투명하게 비춰지는 게 제가 추구하는 인간상이기도, 디자인적 가치관이기도 해서, 사실은 닙그너스 디자인에서 보이는 개방적이고 과감한 여성상과 본질적인 레벨에서는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닙그너스 안에서 추구하는 여성상도 결국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여성성을 두려워하거나, 축소하지 않고, 받아들여서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하거든요.

  • 최근 관심있게 본 아티스트나 SNS 계정이 있다면?

    fishingarrett

    이 계정을 자주 봐요. 플로리다에서 야생동물 생태계를 보존하는 직업을 가지신 분인데 생태계를 파괴하는 20피트 이상의 버미즈 비단뱀을 잡으러 다니면서 마주치는 야생동물들에 대해서 재밌고 간략하게 소개해요. 악어나 독거미 같은 걸 손으로 만지면서 소개하시거든요. 모든 동물의 습성을 다 알고 있는 사람 같아서 너무 신기하고, 제 일상에서는 그런 광경을 볼 일이 없으니까 너무 이질적이라 재밌어요.

    브랜드 초반에는 가슴을 겨우 가리는 탑, 단추가 백 개쯤 달린 것 같은 셔츠 등 실험적인 아이템들이 많았습니다. 여전히 기조는 유지하고 있지만 그때보다는 더 웨어러블해졌다고 느껴집니다. 변화의 계기가 있었을까요?

    저는 제가 곧 브랜드이고, 브랜드가 곧 저라고 여기기 때문에, 제가 살아가면서 겪는 변화를 브랜드도 어떤 생명체로서 함께 겪는다고 생각해요. 직접 옷을 만들게 되면서 옷 쇼핑을 거의 안 하고 제가 만든 옷들을 입는데 아무리 멋져도 손이 안 가는 옷이 있고, 큰 고민 없이 만들었는데 손이 자주 가는 옷들이 있더라고요. 아무리 멋져도 손이 안 가는 옷에 대한 동경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요. 자주 살에 맞대야 친해지고, 사람들처럼요.
    여전히 실험적인 디자인을 만드는 것 자체에는 관심이 많은데, 한 아이템에 집중시켜서 강하게 보여주느냐 아니면 어떻게 분산시켜서 녹여내느냐가 사람들이 느끼는 다름을 결정하는 것 같아요.

  • 최근 MUSINSA EMPTY와의 익스클루시브 캡슐 컬렉션을 발매했습니다. 컬렉션에 대해 간단히 소개한다면?

    MUSINSA EMPTY의 고객과 닙그너스는 취향이 잘 맞는 사이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희가 좋아하는 아이템을 좋아하시더라고요. 가장 인기가 많은 베스트 셀링 아이템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탄생시키고 싶어서 이것저것 색다른 디자인적 시도를 해봤어요.

    개인적으로 캡슐 컬렉션에서 가장 맘에 드는 피스는 무엇인가요?

    그린/블루 계열의 카모 패턴의 하트 셋업. 정말 좋아해서 요새 자주 입고 다녀요.

    공통 질문입니다. MUSINSA EMPTY에 입점되어 있는 브랜드 중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거나 추천하고 싶은 브랜드가 있다면?

    미스타(Miista)의 신발들과 초포바 로위나(Chopova Lowena)의 과감하고 키치한 디자인을 너무 좋아해요! 그리고 저희 브랜드 닙그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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